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둠의 심연 (문단 편집) == 평가 == 이성과 과학으로 중무장한 모범적인 문명인인 커츠가 어느 순간 밀림 속 야만에 매혹되고 동화해 온갖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면서 공포스러운 지배자로서 군림하려는 것을 이용해, [[백인의 의무]] 따위의 학술 연구나 계몽 따위로 치장된 당시 제국주의가 알고 보면 야만인들의 광기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는 역설을 보인다. '가장 발달된 문물의 순례자'들이 콩고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내면의 야만성을 마주한다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분명히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한편 이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일단 아프리카 흑인들이 야만인이라는 전제를 깔아 놓고 '합리적인' 백인이 흑인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타락하는 내용을 보여 주며 그 야만성이 흑인들과 동일하다는 방식을 취한 탓에 이 작품도 제국주의에선 벗어났을지 몰라도 인종주의에선 벗어나지 못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등장하는 흑인들을 향한 말로우의 시선 역시 동물을 보는 듯한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는 1975년의 강연에서 이 소설에 대해 '아프리카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통하고 모욕스럽다'고 했으며, 작가 콘래드를 향해서도 '인종차별적인 좁은 시야를 가진 인물'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는 아체베가 인종차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인지도 높은 작가인 콘래드를 디스했다고 봐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날에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흑인들에게 “수동적으로 백인의 지배를 받아들이며 백인들에게만 도움을 청하는 모자란 톰 아저씨”라는 식으로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콘래드는 아프리카인 뿐 아니라 자기 소설의 묘사되는 사람들을 대부분을 매우 냉소적으로 묘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키플링]]의 소설들마냥 지나친 백인 우월주의로 사실상 매장당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인종차별을 없애자고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가 활동한 시기가 '''1960년대'''였는데, 이 소설이 출판된 해는 1899년으로 20세기도 아니고 '''19세기'''다. 이런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면 아무리 [[백인 우월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제국주의 아래에서 흑인들의 처참한 처우를 비판하고 나서며 백인들도 야만인이라고 주장한 것만으로 충분히 선구적이며 충격적인 시도다. 오히려 상기의 비판이 시대나 다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주위만 보고 생각한 비판이라 볼 수 있을 지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